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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세계 최강 미국의 붕괴

by 돈쿡 2022. 8. 12.

 

 

  • 1910년대에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 전쟁에 참전하지 않으면서 역대 최고의 경제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경제성장률이 42% 나 되었고 그 당시 개인 평균 소득이 1,500달러, 실업률이 4% 이하였습니다. 이처럼 제1차 세계대전을 발판 삼아 가파른 경제성장을 하면서 미국에는 점차 버블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이는 곧 미국 경제 대공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후 이 대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전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됩니다. 이러한 25년간의 경제 성장과 붕괴 및 재건의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미국이 가파른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

1910년대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하지 않았던 미국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에게 무기와 식량들을 공급했습니다. 세계대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이 아닌 전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참전한 대전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매년 막대한 양의 수출을 기록할 수 있었고 이는 실업률의 감소와 높은 경제성장률, 1인당 평균 소득이 높아지는 결과 즉, 경제 대호황을 이루게 됩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후 미국의 소비는 높은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여파로 전 세계의 인프라와 건물 등이 무너진 상태였고 이를 재건하는 데 투자하면서 경제성장을 이어갔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이제껏 맞아보지 못한 경제 호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2. 미국 금융시장에 버블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해외에 적극적인 투자가 시작되면서 많은 기업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투자자가 주식시장에 몰려들게 됩니다. 그 결과 1921년부터 1929년까지 주식시장은 다우존스 지수를 기준으로 40p에서 381p로 약 10배의 상승을 기록합니다. 이 기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주식 불패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은행에서도 주식투자자에게 자산 대비 10배까지 대출을 해주었습니다. 그 당시의 미국의 허버트 후버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모든 냄비에는 닭고기를, 모든 차고에는 자가용을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 금융시장에는 말도 안 되는 크기의 버블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3. 검은 목요일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아침 뉴욕증권거래소에는 주식을 팔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렸습니다. 주식이 기업의 가치에 비해 너무 높이 올라가 있다는 낌새를 알아챈 외국인 투자자들이 미국 증권시장에서 발을 빼면서 주식은 폭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폭락 소식을 들은 투자자들은 눈치를 볼 새도 없이 너도나도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람을 공포에 내몰았던 10월 24일 목요일을 검은 목요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날을 기점으로 다우존스 지수는 한 달 만에 반토막이 나는 일이 벌어지기까지 합니다. 이후 4년간 미국의 경제는 계속해서 수직 낙하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축을 지탱하고 있어서 미국이 무너지면 미국을 일으켜 세울 나라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기간에는 증권시장이 1/9 지점까지 폭락하게 되고 미국의 실업률은 25%를 기록했고 은행들이 파산하게 되면서 국민들은 은행에 예금된 돈들을 돌려받을 수 없었던 경우가 많았습니다. 후버 대통령의 무능으로 이러한 경제 대공황이 발생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때 지어진 마을이 그 유명한 '후버 빌' 입니다.

 

 

 

4. 뉴딜정책, 미국을 일으켜 세우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 5년간 미국의 경제는 붕괴하였습니다. 미국의 경제를 되살리고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3년 누구나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뉴딜정책을 시행합니다. 일단 미국 경제가 되살아날 수 없는 이유는 국민들의 수요심리가 크게 위축되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그 당시 돈이 생기면 가장 안전한 금으로 바꿔놓고는 했는데 이는 달러의 순환을 막아 경기 회복에 큰 걸림돌이 되는 요인이었습니다. 따라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의 첫 번째로 달러를 금으로 바꾸지 못하게 하는 금본위제 폐지를 진행했습니다. 그다음으로는 국민들의 소비가 위축된 가장 큰 이유인 돈이 없는 점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사업을 펼쳐 실업률을 낮추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를 진행했고 민간 자원 보존단을 수립하여 민간 국토 사업에 청년들을 고용하여 실업률을 낮추었고 달러의 순환을 가속화했습니다. 이 뉴딜정책으로 인해 경제는 4년 만에 다시 살아났지만 대규모의 공공사업을 진행했던 탓에 너무 많은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시기에 맞게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해 극복하게 됩니다. 제1차 세계대전처럼 무기와 식량을 공급해 완전고용을 이루었고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와 더불어 전 세계의 패권을 쥐게 되면서 길고 길었던 미국의 경제 대공황은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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